가장 맛있는 음식온도
음식 온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의 크레이그몬텔 연구팀이 초파리를 이용하여 음식의 맛과 온도에 관해 연구했다. 조금 전까지 군침을 흘리며 맛있게 먹던 음식인데 음식을 앞에두고 먹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파리가 배가 불러서 먹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맛이 없어서다. 위 연구 결과 몬텔 연구팀은 음식의 온도가 상온보다 단 몇 도만 내려가도 초파리들이 맛이 없어 먹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렇듯 온도에 따른 맛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음식의 맛이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 성분들과 조리방법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음식의 맛을 책임지는 다른 중요한 조건에는 하나가 더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음식의 온도'이다. 온도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신비한 현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맛이 온도에 따라 변한다?
음식을 먹을 때 혀에서 느끼는 맛은 짠맛, 단맛, 쓴맛, 신맛이다. 여기에 더해 '감칠맛'이 다섯번째 맛으로 2000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감칠맛은 글루탐산의 맛인데 1985년 일본의 이케다 박사가 발견 하였으며, 그 후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연구진에 의해 이 감칠맛을 감지하는 세포 수용체가 발견되어 공식적인 맛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혀에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맛을 감지하는 미각세포들이 있다. 흔히 우리가 '매운맛' 이라고 부르는 것은 혀의 미각세포가 느끼는 진짜 맛이 아니다. 이것은 캡사이신과 같은 성분이 우리 혀와 입의 피부를 자극 하여 화끈거리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혀에 있는 미각세포가 음식 속의 특정 맛을 내는 화학성분을 감지하여 음식의 맛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맛을 느끼는 과정에 '온도'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우리는 일상생활 에서 가끔 이러한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중 급한 일이 생겨 커피를 책상에 두었다 가 나중에 다시 마시려고 하면 커피가 다 식어버려 너무 쓰고 맛이 없어서 마시기가 힘들다. 몬텔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이는 커피가 뜨거울 때에는 쓴맛과 함께 단맛도 잘 느껴지는데 식으면 단맛을 덜 느끼게 되어 상대적으로 쓴맛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저녁에 먹다가 남긴 아이스크림을 식탁 위에 두고 다음 날 아침에 먹으려고 하면 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달고 매스껍게 느껴져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분명히 똑같은 커피와 아이스크림이지만 온도가 달라지면 이렇게 맛이 달라진다. 최근 여러 연구팀에 의해서 음식의 맛과 온도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원리가 밝혀지고 있다. 미국 클렘슨대학의 폴 도손 연구팀이 2016년에 음식연구학술지(FR)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맛이 온도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연구 팀은 설탕을 이용한 단맛, 소금을 이용한 짠맛, 그리고 시트릭산을 이용한 신맛에 대해 3가지 온도(3C, 23C, 60°C)에서 실험했다. 이 실험을 통해 무척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첫째로 단맛은 세 가지 온도 중에서 가장 높은 온도인 60°C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우리가 핫초코를 뜨겁게 해서 먹으면 더 달고 맛있게 느껴진다는 경험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다 식어버린 핫초코는 단맛이 덜해서 뜨거운 것에 비해 맛이 없게 느껴진다. 단맛과는 달리 짠맛은 온도에 따른 맛의 차이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신맛은 상온인 23°C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외에도 1980년대에 그린과 프랭크만 연구팀은 쓴 '맛이 온도에 따라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연구 를 했고, 이 연구에 의하면 커피 속에 들어있는 쓴맛을 내는 성분인 카페인은 온도가 높을 때 그 쓴맛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왜 온도에 따라 맛이 변할까?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 맛을 느끼는 것은 그 음식 속에 맛을 느끼도록 하는 성분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짠맛을 내는 성분으로는 소금의 주성분인 염화나트륨이 있고 단맛을 내는 성분에는 포도당, 과당, 사카린 등이 있다. 또한 쓴맛을 내는 성분은 카페인과 퀴닌 등이 있고 신맛은 시트릭산과 같은 성분에 의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감칠맛은 우리가 요리에 사용하는 조미료의 주성분인 글루타민산(Monosodium glutamate, MSG)에 의해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맛은 이러한 음식 속의 화학성분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주 옛날부터 '식기 전에 밥 먹어! 라고 외쳤다. 다 식어버린 된장찌개와 생선구이는 맛이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왜 온도가 달라지면 맛도 달라지는 것일까? 음식의 맛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1930년대에 한(Hahn)과 군더(Gunther)와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신경생 리학적 연구를 통해 연구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에 벨기에 루벤대학 연구팀에 의해 보다 분명한 과학적 실체가 발견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혀에 있는 'TRPM5'라는 이온채널 때문이었는데, 온도가 올라가면 혀의 TRPM5 이온채널이 더 활성화되어 더 강한맛 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입으로 맛을 느낀다는 착각
뚝배기에 금방 끓여낸 된장찌개를 따뜻할 때 한술을 피서 먹으면 참 맛있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찌개 속의 소금 성분이 혀를 자극한다. 소금 성분인 염화나트륨이 찌개 안에서 염화 이온과 나트륨 이온으로 분리되는데 이 중에 나트륨 이온이 우리 혀 표면의 센서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때 그 나트륨 이온 감지 센서가 작동 하면 우리는 '짜다'라고 맛을 느낀다. 이처럼 우리 혀에는 다섯 가지 맛의 성분을 감지하는 각각의 센서들이 있어서 각각의 맛을 느끼도록 해준다. 생물학자들은 이 센서를 '미뢰' 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입으로 맛을 느끼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진짜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은 우리 '뇌'이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된장찌개를 한 술 떠먹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된장찌개 속 나트륨 이온이 혀에 있는 나트륨 이온만을 감지하는 센서를 자극한다. 이때 그 센서는 전기신호를 만들어서 신경이라는 도선을 통해 우리 뇌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뇌에서 '된장찌개가 짜다.'라고 인식한다. 동시에 된장찌개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구수한 향이 코로 들어가 코의 후각센서를 자극한다. 이 후각센서가 신경을 통해 뇌로 신호를 보내면 뇌에서 구수한 냄새를 인식한다. 이뿐만 아니다. 된장찌개의 따뜻한 온도도 입의 피부세포를 통해 감지되어 뇌로 신호가 전달된다. 이러한 신호들을 종합하여 뇌는 '역시 된장찌개가 구수하고 참 맛있어! 라고 인지한다. 사실 입은 맛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서 신호를 만들어 뇌로 보내는 역할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짜 맛은 입이 아닌 뇌가 느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음식의 맛과 관련된 다른 요소
음식의 맛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그 음식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성분에 의해 정해지지만, 이외에도 여러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다. 위에서 살펴본 온도도 그 중 하나이고 다른 요인으로는 산성도(pH)와 이온들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산성도가 낮은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PH2.5 정도)나 레몬(DH 2~4 정도)과 같은 과일은 산성이어서 청량감과 시큼한 맛을 더해준다. 또한 우리가 식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음식을 입에서 씹을 때에 느끼는 감촉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똑같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어도 걸쭉한 죽으로 만든 것과 빵으로 만든 것은 식감이 다르다. 음식에 들어있는 화학성분이 미뢰를 자극하여 맛을 느끼는 화학적인 작용을 하는 것에 비해 음식의 식감은 딱딱한 정도나 점도로 느끼는 물리적인 작용이다.
맛있는 온도
어떤 음식은 차갑게 먹어야 맛있고, 어떤 음식은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다. 만약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면 맛이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수박은 시원하게 먹어야 더 맛있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음식의 온도는 뭘까? 농촌진흥청이 2019년에 개발한 스티커를 활용하면 알 수 있다. 이 스티커는 수박을 비롯한 과일의 가장 맛있는 온도를 색깔로 표시해준다. 수박에 이 스티커를 붙여두면 가장 맛있는 온도인 9~11°C에서 붉은색을 나타낸다. 수박과 같은 당이 많은 달콤한 과일은 5°C보다 10°C에서 단맛이 15%정도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차가운 냉장온도 보다 약 10°C 내외에서 시원하게 해서 먹는 것이 훨씬 더 달다. 미국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시원한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와 함께 햄버거를 먹는다. 그리고 중국 식당에서는 식전에 따뜻한 차를 내어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느 식당을 가든지 차가운 물을 마시며 식사를 한다. 식사전에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과 찬물이나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은 혀의 온돌르 다르게 해서 음식을 먹을 때에 맛을 느끼는 정도를 다르게 한다. 혀에 너무 차가운 물이 닿으면 순간적으로 혀가 마비되어 맛을 잘 못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습관처럼 찬물을 음식과 함께 내어줄 것이 아니라 음식의 종류에 따라 이에 맞는 온도의 물을 함께 내어주면 훨씬 더 음식맛이 돋보이고 맛있어 질 것이다. 음식을 요리하고 먹는 과정에서 맛을좌우하는 '온도'라는 레시피를 잘 활용하여 더욱 맛있는 음식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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